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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아날로그

[서평] 병신과 머저리(이청준)

by 마라민초닭발로제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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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과 머저리 - 예스24

『서편제』 『눈길』 『당신들의 천국』 등 우리 시대의 한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하려 한평생 고뇌한 이청준 작가의 전집. 지난 2008년 7월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문학을 보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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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수집

<초반부>

상처를 입힌 노루는 설원에 피를 뿌리며 도망쳤다. 사냥꾼과 몰이꾼은 눈 위에 방울방울 번진 핏자국을 따라 노루를 쫓았다. 핏자국을 따라가면 어디엔가 노루가 피를 쏟고 쓰러져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흰 눈을 선연하게  물들이고 있는 핏빛 가슴을 섬뜩거리며 마지못해 일행을 쫓고 있었다. 총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후회가 가슴에서 끝없이 피어올랐다. <나>는 차라리 노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기 전에 산을 내려가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이기만 할 뿐 가슴을 두근러리며 해가 저물 때까지도 일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후반부>

- 하지만, 나는 오늘 밤 노루를 보고 말겠다. 피를 토하고 쓰러진 노루를.

 

- 나무들은 높고 산골엔 소름 끼치는 고요가 짓누르고 있었다. 이상스런 외로움이 뼛속으로 배어들었다. 

 

- 총소리는 산골의 고요를 멀리까지 쫓아버리듯 골짜기를 샅샅이 훑고 나서 등성이 너머로 사라졌다. 그 소리의 여운을 타고 웬 그리움 같은 것이 가슴으로 젖어들었다. 문득 수면에 어리는 그림자 처럼 희미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 나의 아픔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혜인의 말처럼 형은 625 전사장자 이지만, 아픔만이 있고 그 아픔이 오는 곳이 없는 나의 환부는 어디인가. 혜인은 아픔이 오는 곳이 없으면 아픔도 없어야 할 것처럼 말했지만, 그렇다면 나는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인가.

 

- 나의 일은, 그 나의 화폭은 깨어진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것을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망설이며 허비해야 할는지 모른다.

 

‘병신과 머저리’ 줄거리 요약 및 후기

형은 의사이다. 형은 여자아이의 수술에 실패하고 의사로서의 직업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이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소설(자전적임)을 쓴다. 소설에는 주인공이 형으로 투영되어 진행된다. 형이 쓴 소설에서 6·25전쟁이 발발하고 전상자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한다. 그 소설(형이 쓴)에서 부상당한 김일병과 다른 병사인 관모가 존재한다. 관모는 눈 오는 날 더 이상 쓸모없는 관모를 죽이자고 한다. 시간이 흘러 눈 오는 날이 되었을 때, 형은 더 이상 소설을 이어 나가지 못한다.

형의 소설을 읽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것에 짜증을 느낀다. 결국 관모가 오기 전 김일병을 죽이고 소설을 끝낸다. 하지만 형은 내가 쓴 소설을 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관모를 죽이고 소설을 끝낸다.

나는 나와 헤어진 연인의 결혼식 소식을 듣는다. 그녀의 결혼식에는 당연히 불참하였고, 당일 날 술에 취한 형은 소설을 태운다. 소설을 태우면서 김일병을 죽인 것과 매사에 수동적인 나에 대해 비판한다. 또한 자신이 죽인 관모를 오늘 봤다고 한다. 나는 나의 환부가 무엇인지에 대해 절규하며 소설이 막을 내린다.

 

생각

피를 토하고 쓰러진 노루

“형” 소설에서 노루라는 장치가 많이 나온다. 어릴 때의 노루 사냥에 대해 무섭고, 도망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관모를 죽이는 부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노루를 내 두 눈으로 보겠다는 말을 한다. 형이 생각하는 노루의 장치는 아픔이다. 아픔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애써 도망가는 과거와는 다르게 미래에는 아픔을 정면으로 봐서 초월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결의가 작품에서 드러난다. 작중이 6·25 직후인 걸 감안하여, 6·25에 대한 아픔을 마주하고 도약하자는 작가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개인이 가진 콤플렉스나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체화 되지 않은 환부에 너무 걱정하지 말기

작중에서 나는 형과는 다르게 아픔이 실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작품 당시 1960년대 후반이라 군부독재 정치 시절이라 그렇다.) 그러면 환부를 모르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우 고통스럽지만, 그 원인을 모르는 경우에는 도대체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할까?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단 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몸을 움직이고 공부를 하며 빼곡하게 나라는 활자를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그런 경험들로 내 환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살아있는 관모

형은 마지막에 관모가 아직 살아있다고 했다. 형은 관모가 살아있어서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며 짜증을 냈다. 관모는 슬금슬금 형을 무서워하는 눈치라고 했다. 형은 6·25의 아픔을 이겨내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관모가 살아있는지 아니면 형이 만들어 낸 분신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전만큼 관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과거의 아픔에 정면으로 이겨내고자 하는 형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후기

책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글의 진행 및 흡입력이 잘 만든 영화보다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는 서평을 안 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단편을 두 번 정도 다시 읽는 스스로를 보았습니다. 안 쓰는 건 내재되어 있는 피 흘리는 노루를 피하는 것과 같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쓰게 되었습니다.

취준생이라 그런지, 책에 공감도 많이 되었습니다. 글에서는 형제관계로 국한하였지만, 실제로 독재 정부를 거쳐 아픔을 해결한 부모님과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는 “나”가 겹쳐서 보였습니다.

책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