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오십대 남성의 강의를 들었어요. 너무 빤해서 들을게 없는 강연 같죠? 맞아요. 언니 그런데 그 빤한 게 사람맘을 막 쥐고 흔들던데요? '꿈' 이라는 말을 듣는데 가슴 한쪽이 싸한게 찌르르 아픈 것도 같고 좋은 것도 같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요.
<비행운_서른 김애란>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취직 공고에서 높디높은 허들을 다시 한번 마주했을 때이다. 지금은 논란으로 매장당한 문분 씨의 "비행운"이라는 노래에서 나오는 "너는 자라 내가 겨우 되겠지..."라는 가사로 유명한 책이다. 책은 단편으로, 어디로도 갈 수 있는 희망을 잠깐 보여주는 비행운과 그에 대조되는 주인공들의 비행운(非幸運)을 보여준다. 그중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한편으로 정감 갔던 "서른"이라는 대목을 소개하려 한다.
서른의 줄거리는, 노량진에서 재수할 때 보았던 언니에게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언니에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털어놓고 연락이 없던 공백의 시간 동안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 토로하게 된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해보는 자신의 돈을 만져보거나, 현실 때문에 선택을 포기하거나, 가르치던 제자에게 사랑을 받는 소소한 일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나"는 점차 집의 경제적 상황이 기울고, 취직도 되지 않는 난항을 겪는다. 이때 전에 만났던 애인을 통해서 다단계에 빠져들게 된다. 다단계에 빠지고 금전적 및 인간관계가 결국 파탄을 맞게 된다. "나"는 더 이상 물건을 팔 수 없는 상황에 도래할 때, 가르치던 제자에게 안부 문자가 온다. 그렇게 제자를 다단계에 포섭하고 "나"는 다단계를 빠져나오게 된다. 가르치던 제자에게 도움을 달라는 문자가 오지만, "나"는 무시해 버린다. 어느 날 제자가 문고리에 목을 걸어 자살시도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에게 갈까 고민을 내비치며 소설이 끝나게 된다.
시시한 어른
소설에서 "나"는 시시한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 20대 초반에 내가 품었던 이상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차가운 아니 어쩌면 뜨겁고 습도 높은 더위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20살 초반에 시시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시시한 어른은 그저 주위를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불편해도 합리화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산적이고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막연한 관념에 이끌려 이리저리 세상물을 먹다 보니 도 다른 현재의 나는 점차 재미 없어지는 것 같다. 가치 있는 일들을 보곤 할 때 과거에는 행위에 명성을 두었다면, 현재는 돈이라는 관념을 깊게 결부하여 생각하고는 한다. 또한 자주 했던 사회 환원적인 생각과 개념에 대해 무시하고 싶다. 현재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하나둘씩 포기하고 나중에는 말을 달고 사는 어른이 된 것 같아 속상하다.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
소설에서 이 문장을 갖고 웃기다고 하는데, 이 문장이야말로 거짓 그 자체이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지 다르다. 집에 빚이 있을 수도, 당장 내일 내야 하는 전기세에 전전긍긍할지도, 이상은 돈을 벌 수 없을 수도, 아니면 애매한 재능을 갖고 있는 지도... 위의 문장은 절대 참이 될 수 없다. 각자 상황을 고려하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허황된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대입한 문장들을 진리라고 믿으며, 비판적 생각 없이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옳고 남은 틀린다는 흑백을 비추며 상대방을 가 내린다. 어쩌면 그들을 치켜세우는 것 일수도. 성공한 어른이라면 성장하는 청년들에게 현실적이고 자세한 피드백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이다.
마지막으로 꿈을 낮추면 그것을 꿈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마치겠다. 합리화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데...라는 고전적인 어투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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